눈보라...최영미 새날이다. 밀린 빨래와 청소를 마치고 목욕까지 했건만, 헌 몸에 새옷을 걸쳐주고 드러누웠건만, 마음은 어제의 방구석에 쳐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다. 연말 세금 정산하듯 지난날들을 한꺼번에 처분하면 얼마나 좋을까. 23평의 정든 폐허를 서성였다. 그 많은 도시들... 이름 모를 거리와 후미진 골목들을 헤매고 숱한 방들을 들고 난 뒤에 만난 나. 지구를 몇바퀴 돌았건만 결국 내 속을 헤매었구나. 지도에도 없는 나라를 찾아서. 느닷없이 창가로 날아든 풍경 하나, 아우성치며 공중분해되는 하얀 눈송이들. 하얗게 돋을새김되어 되살아나는 그때 그 시간들. 허공에 박히는 추억의 파편들아. 부디 너희끼리 부딪쳐서 추락하기를... 지상에 닿자마자 녹아 스며들기를... 단단한 시멘트 벽을 때리는 바람소리만 휭휭, 사납게 미쳐 날뛰고 마음의 쑥대밭에는 눈보라친다. 용서하지 못할 오후가 뒤집어지려나.